5세기 중반, 한강 유역은 고대 한반도의 심장부였습니다. 이 지역을 둘러싼 삼국의 경쟁은 치열했고, 결국 475년 장수왕의 고구려가 백제의 수도 한성을 함락하며 한강을 장악합니다. 이 사건은 백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고, 한반도의 세력 균형을 뒤흔들었습니다.
한강의 전략적 가치
한강 유역은 서해를 통한 중국과의 교역로이자, 내륙과 남해를 잇는 수운의 중심지였습니다. 농업 생산력도 뛰어나 인구와 군사력 확충의 기반이 되었죠. 따라서 이 지역을 잃는 것은 국가의 생명줄을 잃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장수왕의 남하 작전
장수왕은 평양 천도 이후 남진 정책을 강화했습니다. 백제의 방어선이 약해진 틈을 타, 475년 대군을 이끌고 한성으로 진격했습니다. 고구려군은 빠른 속도로 성을 포위했고, 개로왕은 항전 끝에 전사했습니다.
백제의 충격과 분노
한성을 잃은 백제는 정치·경제 중심지를 빼앗겼습니다. 왕실과 귀족은 급히 웅진(공주)으로 천도했지만, 한강을 통한 교역로가 차단되면서 국력은 급격히 약화되었습니다. 백성들 사이에는 절망감과 분노가 퍼졌고, 고구려에 대한 복수심이 깊게 자리 잡았습니다.
국제 정세의 변화
한강 유역 장악은 고구려가 남한강까지 세력을 뻗치는 계기가 되었고, 신라와의 관계에도 긴장을 불러왔습니다. 신라는 고구려의 남하를 경계하며 백제와 접촉하기 시작했고, 이는 훗날 나·제 동맹의 단초가 되었습니다.
복수를 위한 백제의 몸부림
웅진으로 옮긴 백제는 국력을 재건하며 한강을 되찾기 위한 기회를 엿봤습니다. 그러나 고구려의 군사력은 여전히 강했고, 수십 년 동안 한강은 고구려의 손에 남아 있었습니다. 결국 6세기 중반, 신라가 고구려로부터 한강 하류를 빼앗아 가면서 판도가 다시 바뀌게 됩니다.
결론: 강을 둘러싼 끝없는 전쟁
475년의 한강 전투는 단순한 도시 함락이 아니라, 한반도 패권 구도의 대전환이었습니다. 백제의 분노와 복수심은 이후 수십 년간 삼국의 외교와 전쟁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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