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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역사

고국천왕의 쌀 대출 정책, 지금 복지보다 앞섰다?

by 한국의 역사 그날 2025.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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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린 백성을 외면한 왕은 오래가지 못한다.”

이 말은 고대 국가의 통치 철학을 가장 간결하게 드러냅니다. 수많은 왕들이 군사력과 확장을 중시했지만, 진정한 리더는 위기의 순간에 백성의 삶을 지키는 선택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구려의 제9대 왕인 고국천왕(재위 179~197년)은 단순한 정치인이 아닌, '복지정책의 시조'라 불릴 만큼 의미 있는 제도를 남긴 인물입니다.

그가 만든 ‘진대법(賑貸法)’은 단순한 구휼책이 아니라, 당시 국가가 백성의 생존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정책이었습니다. 지금부터 그 진짜 의미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진대법이란 무엇인가: 고대판 ‘사회안전망’

진대법은 고국천왕 16년(서기 194년)에 시행된 정책으로, 봄철 식량이 부족한 농민들에게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 추수 후에 갚도록 한 일종의 공적 대출 제도입니다. 이는 국가가 창고에 비축한 곡물을 활용해 기근을 예방하고, 백성들의 생존을 보장한 대표적인 ‘복지 시스템’이었습니다.

단순한 시혜적 나눔이 아니라, ‘대출’의 형태를 취했다는 점에서 현대적인 금융 감각이 깃든 제도였습니다. 이는 백성을 무능한 존재로 여긴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신뢰하고 도운 조치였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이처럼 제도화된 구휼 정책은 매우 드물었고, 진대법은 동아시아에서도 가장 이른 시기의 공적 복지정책으로 평가받습니다.

왜 그 시점이었는가: 배경과 필요성

당시 고구려는 급속한 사회 변화를 겪고 있었습니다. 귀족 중심의 정치에서 점차 왕권이 강화되며 중앙집권 체제가 정비되던 시기였고, 영토 확장과 더불어 농업 기반의 안정이 절실했습니다. 그러나 봄철마다 반복되는 식량난은 농민들의 생계를 위협했고, 그로 인한 민심 이반은 국가 운영에도 부담이 되었습니다.

고국천왕은 이 문제를 단순히 ‘가뭄’이나 ‘천재지변’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제도적으로 이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고, 그 결과물이 진대법이었습니다. 이 제도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국가가 백성을 신뢰하고 협력하는 ‘국민 통합 정책’이었습니다.

왕의 시선이 바뀌는 순간: 복지의 정치철학

고국천왕 이전까지 대부분의 왕권은 전쟁과 정복, 외교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내정을 중시했고, 특히 백성의 삶을 통치의 중심에 두었습니다. 진대법은 단지 쌀을 빌려주는 제도가 아니라, ‘국가가 백성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상징적 선언이었습니다.

이는 심리학적 관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인간은 ‘불안정한 시기’에 누군가가 자신을 보호하고 있다는 믿음이 생기면, 그 공동체에 더 큰 충성심과 안정감을 가지게 됩니다. 고국천왕은 이를 꿰뚫어보았고, 복지를 통해 민심을 얻고 왕권을 강화한 것이죠.

귀족의 반대와 구조 개편

물론 모든 이가 이 제도를 환영한 것은 아닙니다. 진대법은 국가가 직접 곡물을 관리하고 배분해야 했기에 귀족들의 경제적 특권을 일부 제한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당시 귀족들은 각 지역의 창고를 지배하며, 기근 시기에 고리대금을 통해 이득을 얻는 구조였습니다.

고국천왕은 이 구조를 정면으로 바꾸려 했습니다. 곡식의 공적 관리, 중앙 창고의 권한 강화, 귀족의 사적 권력 약화 등은 단지 복지정책을 넘어서 권력 구조의 재편을 의미합니다. 이는 고대 국가에서 ‘복지’가 단순한 생존 지원이 아니라 ‘정치적 결단’임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입니다.

오늘날과의 연결: 위기 대응의 원칙

현대 복지정책은 ‘사후 지원’보다 ‘사전 예방’에 방점을 둡니다. 진대법은 바로 이 원칙을 2천 년 전에 실현한 제도입니다. 기근이 닥친 뒤 배급을 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비축한 자원을 체계적으로 분배해 위기를 방지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오늘날의 ‘기초생활보장제도’, ‘긴급복지지원제도’, 혹은 ‘재난기본소득’ 등과 유사한 정신입니다. 다만 진대법은 그것을 ‘상환의 조건’을 붙임으로써 백성의 자존감을 지키고, 국가와 국민이 ‘계약 관계’로 묶이는 점에서 더욱 선진적입니다.

진대법이 남긴 유산: 복지의 뿌리는 사람

고국천왕이 남긴 진대법은 단순히 곡식을 빌려주는 법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국가와 백성 사이에 신뢰를 쌓는 도구였고, 공동체가 위기를 함께 극복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제도 자체보다 그것을 만든 ‘사람의 철학’입니다. 고국천왕은 백성을 믿었고, 그들의 생존을 통치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진대법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지금도 우리는 위기 속에서 복지의 역할을 다시 묻고 있습니다. 복지는 시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생존 전략이며, 공동체를 유지하는 철학입니다. 고국천왕은 이미 그 길을 2천 년 전에 걸었고, 우리는 그 길에서 여전히 배울 것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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